- 2016학년도 연합 · 연계전공 해외현장교육 - 강연 소감문 (지리학과·인문데이터과학 박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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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2017-04-17 18: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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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톄쥔 선생님 강연>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정훈 교수님과 원톄쥔 선생님의 짧은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题目是什么(주제가 어떤 것입니까)?”라는 원 선생님의 질문에 이정훈 교수님은 “没有题目(주제는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셨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두 가지 이유로 그러한 감정을 느꼈는데, 우선은 강연이 아무런 주제 없이 진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기 위해 선생님이 시간을 내서 오신 것일 텐데, 어쩌면 무례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은, 원톄쥔 선생님은 그렇다면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라도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퍼뜩 떠오른 두 생각 중 이 강연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를 궁금해하며, 나는 앞으로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를 하게 되었다.
처음 몇 분(分)은 원톄쥔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통해서 마르크스 경제학과 여러 사회주의 내지는 반(反)자본주의 관련 서적들을 접했음에도 중국 학자가 말하는 경제학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책이 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 구도(構圖), 혹은 일종의 적대적(敵對的)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생각이 담긴 설명을 중국 학자로부터 직접 듣게 되니 내가 여태껏 받아온 고등교육이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 위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원톄쥔 선생님은 사회주의가 붕괴한다는 주류 이데올로기를 반박하면서 과연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진정으로 “사고(思考)”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하였다. 경제력이 정치적인 힘으로 이어진다는 착각, 미국이 독자적으로 IT붐(boom)을 주도했다는 생각, 등은 모두 “서방자본(西方資本)”으로부터 오는 모순이라고 설명하셨다. 간단하게 말해, 선진국의 산업이나 기술이 후진국으로 오면서, 그러한 산업이나 기술이 지닌 모순도 함께 전이가 된다는 말이다.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참신한 통찰이었다고 생각한다. 대개 우리는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들여오게 될 경우 그것이 “우리나라의 맥락” 내에서 끼칠 좋은 혹은 나쁜 영향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지, 기존 국가의 맥락에서, 그리고 도입하게 될 그 새로운 것의 본질적인 성격을 보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산업과 기술이 중국에 병을 전이하게 된 것은 미국식 산업과 기술이었기 때문이거나, 그러한 산업과 기술이 중국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 안에는 모순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해석했다.
원톄쥔 선생님은 서구 자본주의의 모순과 국제정세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 지으며 향촌사회 건설을 통한 사회 안정 도모를 바라고 있으며, 강의 내용을 그대로 듣고만 있지 않고 스스로 사고를 할 수 있는 학생들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하셨다. 강연 도중에도 여러 번 “你们真的思考吗(여러분은 정말로 사고를 하고 있습니까)?”라고 되묻던 원톄쥔 선생님의 말이, 현장교육을 다녀온 지금도 맴도는 것 같다. 과연 나는 정말로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일까? 강연을 통해 전달한 내용도 뜻깊었지만, 진정한 사고에 대한 촉구 역시 나에게 큰 자극이 되는 시간이었다.
<쑨거 선생님 강연>
북경제2외대 인문대의 한 강의실에 들어선 나는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작고 낮은 높이의 책걸상, 교단, 칠판, 교실 한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모두 고등학교 때의 것과 매우 유사하였다. 북경제2외대는 그러한 감성을 담고 있었다. “문과만 있어서 학교가 작다”는 중국인 친구들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건물은 크고 대학교 부지도 넓었지만, 한 강의실 안에서는 그 물리적인 크기나 심리적인 동향(動向)과 같은 모든 것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강의실 안에 쑨거 선생님이 들어오셨을 때 매우 놀랐다.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선생님은 다름 아닌 여자분이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글 몇 편을 미리 읽고 현장교육을 왔음에도 나는 문체나 단어 선택에서든, 이름이나 사상에서든, 선생님의 성별을 곧장 남성(男性)으로 생각했다. 글쓴이는 의도에 따라 글을 통해 특정 성(性)에 매우 편향된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또한 매우 중성적인 태세(態勢)를 취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깨달음은 그저 선생님의 성별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할 정도로 부족한 나만의 허영(虛榮)일지도 모른다.
강연은 인사말로 시작했다. 쑨거 선생님은 전날 들었던 강연의 원톄쥔 선생님보다 말이 느리고 발음이 귀에 잘 들렸던 것 같다. 전날보다 스모그(smog)가 심해져서 베이징 시민으로서 사과를 한다는 말로 선생님은 운을 띄웠다. 이윽고 중국의 이러한 오염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정치적인 고찰을 하며 중국 북방지역의 산업 구조, 도농 간의 지속가능한 발전, 아시아가 당면한 위기 등을 언급하셨다. 강연은 크게는 “서방자본주의(西方資本主義)”의 유입에 따른 중국 사회의 왜곡과 변이(變異)를 다루었다. 서양의 자본은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오염 역시 이전시켰고, 서양의 학문이 유입되면서 중국의 인문학은 사회과학화를 겪었고, 80년대 중국만의 자전거 문화는 자동차가 밀려오며 파괴되었다. 서구의 자본은 그들의 모순도 함께 이전시킨다는 발상은 원톄쥔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며 매우 참신하다고 생각했는데, 쑨거 선생님도 그 같은 내용을 언급하신 것에 놀랐다.
언급되었던 내용 중 인문학의 사회과학화와, 중국의 자전거 문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은 사회과학화를 “인상이 있는, 혹은 내포하는 것을 배척하려는 경향”이자 “고의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정의하셨다. 학문에 있어 조금이라도 감정이 들어간 판단은 모두 배척이 되고, 결국은 아무런 사고도 하지 않고 객관적인 현상만을 바라보려는 경향을 말씀하신 것이다. 역시나 원톄쥔 선생님이 강조했던 “사고”가 다시 언급되어 매우 놀랐다 (두 분의 강연은 실은 접점이 매우 많았던 것일까?). 이것은 실은 데카르트적(的) 이성(理性)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단중지를 외치며 “순수한 시선”을 고집한 이러한 이성은 근본적으로는 매우 복합적인 “문화(culture)”와는 닮아갈 수가 없는데도 현대 학문들은 모두 사회과학화에 일조(一助)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과학에 단순히 감정을 실어 넣는다고 인문학이 되지는 않을 터이다. 현재 중국이 겪고 있는 이러한 사회과학화 위기는 근본적으로는 문화충돌의 한 양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선생님은 한국이 겪고 있는 국정농단 사태를 언급하시며, 복합적인 인간이 매우 단순한 목적의 시위에 참가하게 되는 메커니즘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문화”와 같이 근본적으로 매우 복합적인 인간은 결코 사회과학화의 틀 속에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자전거를 통해 1980년대에 대한 향수를 내비치셨던 것 같다. “자전거 가득한 길거리”를 언급하실 때 쑨거 선생님은 매우 낭만에 찬 사람 같아 보였다. “80년대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만약 지금이 80년대였다면”, “80년대에는 자동차가 이렇게 많지 않고 모두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등을 말씀하시며 1980년대를 눈에 띌 정도로 여러 번 언급하신 것 같다. 그것이 그리움에 기인한 것인지 단순히 현대 중국과의 비교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이 더 이상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큰 아쉬움을 보이시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서양에서 자동차가 들어오고, 누구나 한 대쯤은 소유하고 싶은 것이 되면서 스모그가 심해진다는 이야기로의 회귀를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의 희망처럼 중국에서는 최근 공공자전거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몇 년 전 답사차 대만을 방문했을 때 타이페이의 공공자전거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하던 박사과정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공공자전거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2015년부터 한국에서도 “따릉이”라는 서울시 운영 공공자전거가 도입되면서 나는 공공자전거에 대한 더욱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중국, 그것도 스모그 가득하고 외출도 어려울 것만 같은 수도 베이징에서 공공자전거 시스템이라니!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지하철에서 ofo 공공자전거를 홍보하는 광고를 보았다. 문구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쾌적하게 출근하고 싶다면 ofo!”와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 부근에도 ofo 자전거들이 몇 개 설치되어 있었는데, 쑨거 선생님의 말처럼 정말 베이징에도 공공자전거가 들어섰다는 것이 나는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너무나 반가웠다 (알아본 결과, ofo는 자전거를 즐겨 타는 북경대학교 학생 3명이 시작한 스타트업의 일종으로 현재는 상하이, 광저우, 시안 등의 도시에도 설치가 되었다고 한다).
원톄쥔 선생님에 이어 쑨거 교수님의 강연도 듣고 나서, 중국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자본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큰 불신과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세계체제나 자본주의에 대한 완전한 배척은 아니라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중국만의 것”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보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가 동아시아만의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쑨거 선생님의 말은, 동아시아뿐 아니라 서구의 여타 국가 그리고 다른 체제와의 조화를 고려하고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함께” 존재하고자 하기에 중국은 더욱 더 “중국만의 것”을 추구하고, 독특성을 부각하며 독립적인 위치를 취하려는 노력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노력은 유입되는 서구의 문화에 대한 공격적인 방어가 아닌, “함께” 존재하고자 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